르네 마그리트의 이미지 배반

르네 마그리트, The Treachery of Images
작가: 르네 마그리트 / 제목: The Treachery of Images / 출처: Wikipedia

르네 마그리트의 「이미지 배반」은 검은 줄의 액자처럼 단단히 둘러진 화면 속에, 그럴듯하게 정돈된 대상과 그 대상에 붙은 문장이 함께 놓여 있는 작품이다. 회색과 검은 계열이 화면을 안정적으로 잡아주고, 글자는 그림의 일부인 듯 또렷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은 분명한데, 그 분명함이 곧바로 이해로 이어지지 않는 방식이 바로 이 회화의 긴장이다. 말하자면, ‘무엇이 그려졌는가’라는 질문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에 의해 한 번 꺾이는 구조로 시작된다.

그림이 먼저 도착하는 방식

먼저 시선은 회화의 중심에 선명하게 배치된 대상에 닿는다. 형태는 대체로 읽기 쉽고, 윤곽은 흐려지지 않으며, 화면의 빛도 대상을 또렷하게 떠받친다. 색과 명암은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대신 사물을 ‘지금 여기’에 세워 둔다. 그래서 관객의 머릿속에는 자연스럽게 한 줄기가 생긴다. 여기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 거라고, 눈앞의 형상이 곧바로 뜻과 연결될 거라고 말이다.

문장이 뜻을 잠그는 순간

그런데 화면에는 문장이 함께 놓여 있고, 그 문장이 그림의 기능을 바꾼다. 문장은 사물을 지칭하는 대신, 지칭 방식 자체를 흔들어 놓는 역할을 한다. 마그리트가 만들어내는 ‘배반’은 그림이 거짓이라서가 아니라, 말이 붙는 순간 단어가 대상을 확정해 버리는 규칙을 비튼 데서 생긴다. 상징은 보통 ‘의미를 더한다’고 생각되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의미가 너무 빨리 도착하는 바람에 대상이 어딘가 미끄러져 보이게 된다. 마치 익숙한 표지판을 보는 데 그 단어가 뜻하는 풍경과는 다른 길로 안내하는 느낌처럼, 이해가 완결되기 전에 공기가 한 번 바뀌는 것이다.

결국 「이미지 배반」에서 핵심은 그림과 문장의 관계가 말이 되는 순간마다 생기는 미세한 균열이다. 사물은 사물로 남아 있으려 하고, 문장은 사물을 붙잡아 의미로 고정하려 한다. 그래서 관객은 명확한 화면 앞에서 오히려 더 많은 해석의 여백을 마주한다. 마그리트의 상징은 선명함을 배신하지 않으면서, 그 선명함을 ‘말’이 통과하는 방식에서 감춰진 틈을 보여준다. 눈과 언어가 동시에 정답을 말하는 순간, 그 정답이 오히려 질문을 연장해 버리는 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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