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홍채의 시선, 가까이 와야 보이는 것들

조지아 오키프의 ‘Black Iris’는 꽃을 그린 그림인데도,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꽃잎의 모양 그 자체다. 화면 가득 번지는 깊은 흑색과 자줏빛 음영 사이로 선명한 결이 드러나고, 가운데로 모이는 어둠이 마치 작은 구멍처럼 시선을 붙잡는다.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꽃은 더욱 납작해지는 듯하다가도, 다시 입체감으로 되돌아와 화면 속 공간을 건드린다. 그래서 이 그림은 꽃을 “보여주는” 것보다, “다가오는 감각”을 먼저 요구하는 쪽에 가깝다.
검은 홍채, 멈춘 듯한 순간의 압력
검은 홍채처럼 보이는 중앙의 어둠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응시의 자리다. 오키프는 검은색을 한 덩어리로 끝내지 않고, 가장자리의 어긋난 명암과 미세한 톤 차이로 빛이 지나간 흔적을 남긴다. 관람자는 그 흔적을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정면을 찾으려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런데 이때 시선은 꽃잎을 감상하는 시선에서, 어떤 표정을 읽으려는 시선으로 조금씩 이동한다. 특히 가까워질수록 꽃의 질감은 더 또렷해지지만, 동시에 감상자는 스스로 멈춰 서게 된다. 마치 길을 건널 때 한 걸음 멈추는 느낌처럼, 그림은 관객의 속도를 늦추고 그 정지의 압력을 정서로 바꾼다.
클로즈업의 떨림과, 보이기 직전의 감각
이 작품의 클로즈업은 단순히 큰 화면에서 세부를 확대해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다. 화면 안에서 꽃은 거의 얼굴처럼 가까이 다가온다, 그래서 보는 행위가 한 번의 감상이 아니라 반복되는 확인처럼 느껴진다. 어둠 속에 자리한 중앙은 들어가도 들어가지 않은 경계에 가깝고, 그 애매한 위치가 시선의 진동을 만든다. 결국 ‘Black Iris’가 말하는 것은 꽃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가까이 다가갔을 때 비로소 감지되는 관계의 감각이다. 그래서 이 검은 홍채는 상징이라기보다 분위기다, 관객이 눈을 깜박이는 사이에도 가만히 남아 있는 잔여 감정처럼 오래 지속된다.
작품을 보고 나면 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검은 중심을 향해 정지했던 순간이 남는다. 그 잔상은 자극적인 결론으로 닫히지 않고, 다시 화면 앞으로 돌아가고 싶은 여운으로 이어진다. 오키프의 시선은 결국 멀리 있는 풍경이 아니라, 가까이 다가가 멈추는 순간에서 생겨난다. 그러니 이 그림은 꽃을 관찰하는 일이 아니라, 내 시선이 어디에서 진동하는지 스스로 알아차리게 하는 장면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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